불통의 끝에서 소통을 읽다
영화 '더 테러 라이브', '내 이름은 칸'
“9·11테러는 테러리스트의 소행이긴 하지만 그 발생 원인에는 수많은 잘못된 정보와 이에 대한 몰이해가 깔려 있습니다. TV와 인터넷을 통해 수많은 정보가 넘쳐났지만 미국을 비롯한 서양에서는 이슬람 문명을 이해하지 못했고, 이슬람권은 모욕을 받고 있다고 느끼면서 빚어진 소통의 부재가 테러로 이어진 것이죠.”
현대사회의 소통 문제를 30여 년간 연구한 도미니크 볼통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 소장이 지난해 9월 ‘21세기 새로운 세계화 시대의 열린 소통’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해 한 말이다. 커뮤니케이션 이론에 컴퓨터 공학과 인류학 등을 접목한 ‘소통학’을 창시한 세계적인 사회학자의 말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당시 인터뷰에서 그는 “테러 이후 10년이 지났지만 아직 서로의 소통이 나아졌다고 보기엔 어렵다”고 덧붙였다.
명절에 꽉 막힌 고속도로에서 듣는 라디오에서 나오는 ‘소통 원활’이라는 리포터의 맑은 목소리 만큼 반가운 게 또 있을까. 이렇게 1차원적인 소통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삶에서 소통의 중요성은 새삼스럽게 강조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실제로 소통이 원활한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은 게 사실이다. 가족 간의 불화나 연인 간의 다툼, 직장 상사와의 문제의 시발점도 대부분 소통의 불일치다.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을 때 답답한 마음에 가슴을 치다 못해 더 나아가면 제대로 알아듣고 반응하지 못하는 상대방에 대한 분노가 생긴다. 이런 분노가 켜켜이 쌓여 파국에 치달을 때, 불통의 극에 달했을 때 발생하는 최악의 행위가 테러다. 영화 ‘더 테러 라이브’와 ‘내 이름은 칸’은 ‘최악’의 수단이자 불통의 결과인 ‘테러’라는 소재로 소통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두 작품은 타깃부터 스타일까지 완전히 다르다. 영화 ‘더 테러 라이브’가 테러의 시작부터 종결까지의 과정을 그린다면, 영화 ‘내 이름은 칸’은 한 모슬렘 남성의 인생에 9·11테러라는 거대한 사건이 가져오는 변화를 그린다. 휴먼 드라마를 그리는 ‘내 이름은 칸’과 달리 전자는 ‘드라마’보단 ‘스릴러’를 더 앞세우는 작품이지만, 끝까지 보고 나면 테러는 관객의 입맛을 돋우기 위한 조미료일 뿐 근본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소통의 중요성임을 깨닫게 된다.
(중략)
http://www.bohun.or.kr/images/ebook/gasumkot/gasum_24/gasum_24/EBook.htm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에서 발행하는 사보 '가슴에 피어나는 꽃'에 연재한 '문화공감' 칼럼입니다.
전문은 위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34~3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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