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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 때 떡을 먹다 맛있어서 즉흥적으로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른 소년, 제주도 여행에서 아름다운 풍경에 감동받아 즉흥환상곡을 쓴 소년, 또래 친구들이 ‘빵’ 터지도록 재밌는 음악을 만든 소년. 자폐의 일종인 아스퍼거증후군을 앓고 있지만 음악과 숫자에 천재적 재능을 갖고 있는 소년. 그들이 음악회를 열었다. 한곡 한곡 연주가 끝날 때마다 객석은 술렁였다. 그 음악이 너무 아름다워서…. |
3월 3일 서울 삼성동 올림푸스홀에서 열린 ‘작곡 영재들의 그림책 음악 여행’은 예술의전당 음악영재아카데미 작곡부에서 수학한 6명의 학생이 고영신 지도교수(한국교원대학교 음악교육과)와 준비한 창작 발표회였다. 제일 어린 학생의 나이는 열한 살. 그렇다고 학예회 수준의 연주회를 예상했다면 오산이다. 다양한 연령대의 작곡 영재들이 피아노 건반을 매개체로 관객을 동화 속으로 이끌었다. 또한 여느 연주회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림책과 내레이션이 함께했다는 것. 아이들은 제각기 마음에 드는 그림책 내용에 맞춰 곡을 썼다. 턱시도를 입은 소년이 제 덩치보다 훨씬 큰 그랜드피아노 앞으로 걸어왔다. 객석에서 “엄청 어리네!”라며 수군댔다. 김어윈(11·거제대우초등학교 5학년) 군은 모디캐이 저스타인의 글과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쌍둥이 빌딩 사이를 걸어간 남자’를 연주했다. 두 번째 곡은 박건욱(13·예원학교 작곡과 1학년) 군의 ‘반 고흐, 영혼의 편지’. 빈 센트 반 고흐의 그림 5개를 묶어서 쓴 곡이다. 해바라기 그림에서는 건조하고 시들한 느낌을,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잘라낸 자화상에서는 감2도를 사용해 극도의 긴장감을 클라이맥스로 끌어올려 강렬한 인상을 줬다. 신지섭(13·흥덕중학교 1학년) 군은 ‘괴물들이 사는 나라’라는 그림책에서 주인공 맥스가 장난치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습은 스타카토로, 괴물이 등장하는 장면을 옥타브로 넣어 웅장하게 표현했다. 또래다운 개그감으로 곡 중간에 재밌는 장치를 삽입했다. 다음 차례인 김남걸(15·용인 홍천중학교 3학년) 군이 등장하자 객석이 잠시 술렁였다. KBS 인간극장 ‘화성에서 온 모차르트’ 편에 출연해 알려진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아스퍼거장애가 있다. 아스퍼거장애는 지능과 언어 발달 상태는 정상이지만 자폐 증세를 보이는 발달장애의 일종. 하지만 작곡 능력과 숫자 기억력은 탁월했다. 이번 발표회에서 김군은 아프리카 북부 사하라 사막의 웅대한 아름다움을 피아노 곡으로 표현했다. 화산 폭발로 검게 그을린 흑사막, 석회암 조각상이 즐비한 백사막, 끝없는 모래언덕이 펼쳐진 샌드듄 사막의 풍광이 그의 손끝에서 되살아났다. 최병돈(15·분당 수내중학교 3학년) 군은 교과서에 실려 친근한 작품인 ‘무지개 물고기’를 연주했다. 물고기 비늘이 반짝이는 모습을 트릴과 트레몰로로 묘사했다. 헤엄치는 물고기의 모습은 아르페지오로 표현하는 등 다양한 음악 기법으로 바닷속 풍경을 음악화했다. 마지막으로 음악영재아카데미 작곡부를 수료한 김균민(16·선화예술고등학교 1학년) 군은 그림책 ‘강아지똥’을 가지고 곡을 썼다. 옥타브를 넘나드는 격정적인 음으로 강아지똥이 우는 모습을, 불협화음으로 흙덩이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야기하듯 곡을 만들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바이올린을 배우다 4학년 때 작곡 공부를 시작한 신지섭 군은 “어려운 클래식이 아니라 관객과의 소통을 위한 연주회라고 해서 곡에 재미있는 부분을 넣었다”고 했다. “친구에게 클래식을 들려주니까 별로라고 하더라고요. ‘그럼 이건 어떨까’ 하고 쳐봤는데 ‘빵’ 터지는 거예요. 반응이 좋아서 흐뭇했죠. 오디션 때는 ‘바닷가’라는 곡을 썼어요. 서해안에 놀러 가서 꽃게를 잡고 중간에 진흙에도 빠진 내용을 이야기하듯 썼어요. 스타카토로 위급함을 알렸죠. 지금 들어보면 다시 편곡하고 싶어요(웃음).” 신군이 존경하는 음악가는 베토벤. “베토벤의 인생이 잔인하잖아요. 거기에서 나오는 영감, 그의 곡이 그의 인생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했어요. 제일 좋아하는 작곡가는 라흐마니노프, 그중에서도 피아노협주곡 1번의 3악장을 좋아해요. 경쾌한 면도 있지만 음역이 넓어 치기 어렵죠. 아바 같은 고전 팝송을 좋아하는 아버지께서는 클래식을 들으면 머리는 맑아지는 것 같은데 뭘 말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고 어려워하시더라고요. 쉽지만 다이내믹하면서도 너무 반복되지 않고 소통하는 클래식을 만들고 싶어요.” 다섯 살 때 떡을 먹다가 맛있어서 즉흥적으로 피아노를 치고 노래를 불렀다는 김어윈 군은 경상남도 거제시에 산다. 매주 한 차례 4시간의 작곡 수업을 듣기 위해 버스를 3시간 반씩 타고 서울에 온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면 새벽 2시가 넘는 데다 다음 날 학교에 가야 하지만, 스스로 좋아서 다니는 거라 가기 싫다고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연주회에서는 ‘쌍둥이 빌딩 위를 걸어간 남자’를 선보였다. “어릴 때 읽고 좋아한 책인데, 작곡하면 좋을 것 같아서 골랐어요. 만드는 데 한 달 정도 걸렸어요. 각 장면을 나눠서 곡을 썼죠.” 김군은 음악회에 가면 ‘다른 방식으로 치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주 떠오른단다. 그래서 실제로 집으로 가자마자 변주를 해보곤 한다. “음악가 중에는 쇼팽하고 드뷔시를 좋아해요. 쇼팽 곡 중에서도 많은데…(웃음). 즉흥곡이나 발라드가 좋아요. 제가 후기 낭만파를 좋아하거든요.” 강한 표현 욕구 가진 작곡 영재들 고영신 지도교수는 “그림책 음악 여행이라는 타이틀로 연주회를 계속 해왔는데 현장 반응이 좋았다”고 했다. “그림이라는 회화적인 것, 책이라는 문학적·언어적인 것, 그걸 음악적으로 형상화했다”며 “교육적 내용을 담은 그림책을 많이 활용했다”고 했다. 고 교수는 이번 음악회에서 직접 그림책 ‘동강의 아이들’을 가지고 만든 곡을 들려줬다. 7월에는 ‘이야기, 그림, 그리고 음악’이라는 주제로 연주회를 열 예정이다. “음악영재아카데미에 들어온 아이들의 특징은 소리에 민감하다는 거죠. 대부분 절대음감이에요. 음악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뿐 아니라 모든 소리에 예민해요. 작곡하는 아이들에게는 강한 표현 욕구가 있죠. ‘어떻게 저걸 음악으로 표현해볼까’ 하는 호기심이 있고 집중력이 굉장해요. 오디션에서는 기존의 곡들이 싫증 나서 직접 곡을 써보고 싶었다고 하는 아이들이 많아요. 남이 쓴 곡은 지겹대요(웃음).” 고 교수는 아이의 음악성을 발달시키고 싶다면 먼저 “다양한 체험을 하게 하라”고 조언했다. “곡을 쓰고 음악을 듣는 것 외에도 다양한 경험을 하면 예술적인 사고가 깊고 넓어질 거예요. 한 사람이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하는 축구선수처럼 아이들을 오케스트라 같은 진지하고 심각한 곡 외에도 그림책이나 다큐멘터리 음악처럼 사회에서 요구하는 곡도 쓸 수 있는 작곡가로 성장시키고 싶어요.”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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