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와 여행을 사랑한 남자 인터뷰를 하면서 그의 기억력과 인물 모사 스킬에 놀랐다. 오달수와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할 때면 오달수가 되고, 한석규와의 영화 촬영 이야기를 할 때면 한석규가 되는 그와의 인터뷰는 충무로 스타 여럿을 만나는 배우 투어 같았다. 2012년 오달수와 함께 출연한 연극 ‘키사라기 미키짱’을 봤다고 하자, 2년 전 공연이었음에도 곧바로 야스오에 빙의해 대사를 줄줄 읊었다. “누군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직업으로 배우를 꼽았대요. 답이 없다면서요. 연기자는 오디션으로 선별이 불가능해요. 발성을 기준으로 할지, 발음으로 할 건지, 외모나 인간미 또는 매력으로 할 건지 기준이 없기 때문이에요. 그만큼 어려운데, 제가 살아온 30여년 삶의 연출력과 직·간접 경험이 연기에서 우러나오는 것 같아요.” 방송에서 난독증을 앓고 있다고 밝힌 그는 영화나 드라마 대본 리딩을 할 때 어려움이 있지만 남들 몇 배의 노력으로 극복해낸 진정한 ‘노력파’다. 실제 경험에서 우러나온 그의 연기. 그렇다면 연기의 비결은 그의 삶에 있을 게 분명했다. 그는 “내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연애와 여행”이라고 했다. “내 인생 말고 다른 인생을 디테일하게 살아볼 수는 없잖아요. 그걸 해볼 수 있는 건 사랑하는 사람과 진실한 연애를 할 때 같아요. 상대가 뭘 좋아하고, 뭐에 짜증 내고, 알레르기는 있는지, 마법에 걸린 날은 언제인지까지도 알고 있어야 하잖아요. 그러다 보니 연애하면 자연스럽게 연기가 늘고 깊어지더라고요.” 그는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연애 스타일이 달라진다”고 했다. “제 인생은 목표와 계획대로 되기보다는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바뀌는 것 같아요. 연애란 건 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을 알아보는 과정이더라고요. 상대방이 깨끗한 거울인 거죠. 내가 이런 거에 질투하고 이런 걸 못 참는, ‘이런 인간’이구나 성찰하게 되더라고요.” 그는 “여행을 많이 다니다 보니 일상을 여행하듯 사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토양부터 음식, 사람, 시선, 물, 공기까지 다른 걸 경험하면 몸이 깜짝 놀라면서 감성의 폭이 어마어마하게 넓어지더라고요. 그런데 여행 가서 좋다고 느낀 순간 일상으로 돌아오기가 싫잖아요. 여행은 인생에서 0.1% 비중인데 거기 너무 빠져버리면 나중에 돌아와서 어떻게 할 거냐는 거죠. 결국 일상에서의 여행을 즐기는 수밖에 없는데, 그건 결국 사람에의 여행이에요. 자연을 닮은 사람. 꼭 시골에만 있는 게 아니라 서울에도 많아요. 그런 사람을 만나며 그때그때 여행하는 거죠. 촬영장 가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 진짜, 어떻게 표현이 안 되는데 제 몸의 세포들이 소름 끼쳐하고 헛소리를 삐약삐약 해요(웃음). 누군가를 만날 때의 설렘, 여행하는 느낌 덕에 좋아하는 선배와 친구를 만날 때가 제일 재미있어요.” 개봉을 앞둔 작품들에서는 변화무쌍한 조달환을 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도심 공포 스릴러 ‘맨홀’에서는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 역을 맡았고, ‘레드카펫’에서는 에로 영화감독 정우(윤계상)와 함께 일하는 감성 풍부한 로맨티시스트 촬영감독으로 나온다. 그는 “에로 영화를 찍지만 예술을 한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손예진, 김남길과 함께한 영화 ‘해적: 바다로 간 산적’에서는 장사정(김남길)이 이끄는 산적단 막내 산만 역으로 철봉(유해진)과 티격태격하며 투박한 액션과 재미를 선사한다. “이 작품으로 유해진 선배를 만난 것도 큰 소득이었어요. 선배에게 ‘아무리 노력해도 세상이 안 바뀐다’고 하니 선배가 ‘나는 내가 바꿀 수 있는 것만 바꾼다’면서 ‘세수하고 샤워한 물 모아서 빨래하고, 하이패스를 쓰지 않는다. 나라도 안 쓰면 그만큼이라도 절약되고, 일자리가 하나라도 늘지 않겠냐’는 거예요. 그런 말 한마디, 자연을 좋아하는 모습, 건강한 삶과 생각, 미술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라요.” 중요한 건 지금, 순간의 뭉클함  | ▲올해는 캘리그래피 작가와 배우로 종횡무진하는 그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예능 프로그램에 나갈 줄도, 캘리그래피 작가가 될 줄도 몰랐다”던 그는 “미래의 일은 잘 모른다. 앞으로보다는 지금 어떻게 즐겁게 지낼지 고민을 훨씬 많이 한다. 순간적인 느낌, 순간적인 선택에 집중한다”고 했다. “저라고 우울하지 않겠어요? 누구나 우울하고 짜증 나지만 그걸 당연하게 여기고 잘 극복하는 게 좋은 배우가 되는 길 같아요. 우리처럼 힘든 직업도 없지만 한편으론 이렇게 재밌는 직업도 없어요. 가장 안 좋은 직업이자 가장 좋은 직업이기도 하죠. 인생은 열반에 이르고 천당에 가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매사 즐겁기 위한 과정이라 생각해요. 죽기 전 ‘지구별 여행 재밌게 잘했다’ 싶으면 성공한 인생 아닐까요.” 그는 ‘가난한 것이 비극이 아니라 가난을 극복하지 못하는 것이 비극이다’라는 피천득 작가의 말을 인용하며 “빚도 많지만 하고 싶은 거, 사고 싶은 거에 돈을 쓰기도 많이 쓴다. 돈 쓰는 게 재밌다”고 했다. “20년 돈 모아서 집 살 거 30년 모아 사자는 주의죠. 돈은 빚이라고 오달수 선배에게 배웠어요. 선배가 ‘계좌에 돈이 쌓일 때 그게 내 거라 생각하면 빚이 된다. 돈은 혼자 버는 게 아니다. 돈을 벌게 해주는 사람들과 어떻게 나눌지에 대해 고민해보라’고 얘기하셨죠. 그래서 계좌를 분리해서, 써야 할 데에는 확실히 써요. 그러니 맘도 편하고, 어차피 나눌 거라 생각하면 돈 쓰는 재미가 있더라고요. 아, 물론 예전보다는 모으는 비율이 높아졌어요. 고생하신 어머니께 효도도 해야죠.” 과거와 보이지 않는 미래보다는 지금, 순간의 뭉클함에 감사하려 노력해온 그에게 “조달환의 2014년은 어떨 것 같냐”는 퍽 어려운 질문이었다. 한참을 고심하던 그는 “네팔에 ‘조달환 도서관’ 1천 개를 짓는 것”이라고 했다. ‘목표’냐고 물으니 ‘방향’이라고 정정해 줬다. 그는 여행 다큐멘터리 영화 ‘세상의 모든 것들’을 후원하고 있다. 크라우드 펀딩으로 제작되는 이 영화는 수익금의 일부를 네팔 어린이를 위한 도서관 짓기 프로젝트 후원금으로 쓴다. ‘왼손 고백’(가제)이라는 캘리그래피 책도 준비 중이다. 글씨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하던가. 범죄 수사에도 쓰이는 필적학에 굳이 대입하지 않더라도, 우직한 이 남자의 고백은 뜨겁고 진실했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