ㄴ공연칼럼

당신은 어떤 친구로 기억될까요?

구석구석 구기자 2012. 12. 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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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formance | 구희언의 ‘1막2장’]
당신은 어떤 친구로 기억될까요?
연극 ‘나쁜자석’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우리는 어린 시절 자신에게 고통을 준 사람을 어떻게 기억할까. 또 누군가에게 우리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 연극 ‘나쁜자석’은 이 같은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한 네 남자 이야기로, 연극 제목은 등장인물 중 한 명이 들려주는 동화 제목 ‘나쁜자석(Our Bad Magnet)’에서 따왔다.

2005년 한국에서 초연된 이래 앙코르 공연을 포함하면 5번째 공연이다. 프레이저와 폴, 앨런과 고든. 네 남자의 천진난만한 아홉 살 꼬마 시절부터 밴드 활동을 하고 일탈을 즐기던 열아홉 살 시절, 인생의 씁쓸함을 알아버린 스물아홉 살 시절까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극이 펼쳐진다. 아이에서부터 청소년, 성인까지 소화하는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한 번 봐선 캐릭터 각각의 감정선을 이해하기 어렵다며 수차례 관람하는 마니아도 많다.

스코틀랜드 남서 해안의 작은 마을 거반에 사는 아홉 살 난 프레이저와 폴, 앨런은 오랜 친구 사이다. 대장인 프레이저와 2인자 폴, 바보 같지만 착한 친구 앨런. 이들 무리에 전학 온 고든이 합류한다. 소중한 물건을 타임캡슐에 묻으며 놀던 이들은 고든이 쓴 ‘하늘 정원’이라는 동화를 듣는다. 동화에 감동한 프레이저는 고든과 폐교에서 둘만의 비밀을 만든다.

10년 후 열아홉 살이 된 네 사람은 밴드 활동으로 유명해지겠다는 꿈을 꾼다. 하지만 폴과 프레이저는 음악적 성향이 다르고, 우울한 고든이 탐탁지 않은 앨런은 그에게 “밴드에서 꺼지라”고 말해버린다. 이에 고든은 폐교에 불을 지르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나는데, 이윽고 큰 폭발음과 함께 폐교가 불길에 휩싸인다. 고든의 장례식 이후 충격을 받은 프레이저는 밴드를 탈퇴하고, 남은 두 사람도 제각기 흩어진다.

10년 후 스물아홉 살이 된 프레이저와 폴, 앨런은 어린 시절 함께 추억을 만들었던 절벽에서 재회한다. 출판사에 다니며 고든이 쓴 동화를 출판해온 폴과 엔지니어가 돼 특별한 기계를 만들었다는 앨런, 그리고 고든의 죽음 이후 오랜 시간 방황한 프레이저의 만남. 폐교를 찾은 세 사람은 고든이 생전에 쓴 동화 ‘나쁜자석’을 떠올린다.

이번 시즌은 뮤지컬 ‘빨래’를 만든 추민주가 연출을 맡았다. 작품에서 청춘의 강한 비트를 느꼈다는 그는 직접 프롤로그를 쓰고, 네 사람이 밴드 시절 부르는 노래 ‘튤립’을 새로 작곡해 넣는 등 변화를 줬다.

전 배역은 더블 캐스팅. 보통은 같은 배역에 비슷한 이미지를 가진 배우를 캐스팅하는데 이번에는 조금 다르다. 추 연출은 “프레이저 역의 이동하가 카페라테라면, 정문성은 에스프레소 투 샷 같은 느낌이다. 고든 역의 송용진이 캐러멜마키아토라면 장현덕은 카푸치노 같다”고 말했다. 배우마다 미묘하게 캐릭터 노선과 감정선을 잘 꼬집는다는 비유다. 공연장을 나설 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이다. 내게도 고든 같은 친구는 없었는지, 혹은 내가 누군가에게 고든이나 프레이저, 혹은 폴이나 앨런은 아니었는지 말이다. 2013년 1월 27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1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