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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발레리나 강수진.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수석무용수인 그가 대표작 ‘까멜리아 레이디’로 다시 한국을 찾았다. 고국에서의 전막 공연은 이번이 마지막이란 이야기에 벌써부터 팬들은 탄식한다. 만인의 연인, 영원한 ‘까멜리아 레이디’를 다시는 한국에서 볼 수 없다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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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5대 발레단 중 하나인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수석무용수 강수진(45). 그가 우리에게 ‘춘희’로 잘 알려진 작품 ‘까멜리아 레이디’ 전막 공연을 위해 고국을 찾았다. 2002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2회 전석 매진 기록을 세운 이후 10년 만이다. ‘까멜리아 레이디’는 ‘오네긴’ ‘로미오와 줄리엣’과 함께 강수진을 대표하는 3대 작품으로 꼽힌다. 이 작품으로 그는 1999년 동양인 최초로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이라는 ‘브누아 드 라 당스’ 최고 여성 무용수 상을 받았다. 10년 만에 같은 배역으로 고국 찾아 ‘까멜리아 레이디’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원작인 프랑스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의 자전적 소설을 바탕으로 한 드라마 발레. 까멜리아(동백꽃)를 너무 사랑해 숭배자로부터 많은 동백꽃을 받은 코르티잔(부유층의 공개 애인) 마르그리트 고티에와 순수한 귀족 청년 아르망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그린다. “슈투트가르트 발레단과 함께 한국 무대에 다시 서게 돼 기뻐요. ‘까멜리아 레이디’는 배역부터 마음에 와 닿은 작품이에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편하게 즐기면서 볼 수 있는 작품이죠. 관객들이 공연 끝나고 재미와 슬픔, 감동을 안고 행복하게 집으로 돌아갈 것을 확신합니다.”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예술 감독 리드 앤더슨은 “감히 말하지만 (우리는) 세계 최고의 무용수를 가졌다”며 강수진을 치켜세웠다. “존 크랑코(1960년부터 1973년 사망할 때까지 발레단 예술 감독을 맡음)가 살아 있을 때 한 말이 기억납니다. 재능은 가졌거나 가지지 않았거나 둘 중 하나다. 스텝과 테크닉을 배울 수 있는 무용수는 많지만 정말 ‘춤을 춘다’고 할 만한 무용수는 많지 않아요. 최고의 무용수는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어야 하죠. 그처럼 뛰어난 실력을 본다면 누구든 춤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느낄 수 있고, 그건 평생 기억에 남는 경험일 겁니다. 정말 뛰어난 무용수는 관객은 물론이고 함께 춤 추는 사람에게도 변화를 불러오거든요.” 강수진과 작품에서 사랑을 나누는 귀족 청년 아르망 역의 파트너 마레인 라데마케르에게도 ‘까멜리아 레이디’는 잊을 수 없는 작품. 2006년 그는 강수진과 이 작품을 공연하고 주역 무용수로 승격됐다. 같은 해 독일 공연상 최고 무용수 부문에서 젊은 무용가 상을 받았다. 독일에서도 강수진과 함께 “가장 슈투트가르트다운 한 쌍”으로 평가받고 있다. “강수진 씨의 춤은 직관적이에요. 함께 춤을 추면 재밌죠. 수진 씨에게는 음악 안에서 춤을 추는 게 아니라 감정을 온몸으로 번역해내는 놀라운 능력이 있어요. 그와 함께 춤추는 건 보물처럼 소중한 경험이죠.” 강수진도 “무용할 때 상대와 호흡이 맞는 게 중요한데 처음부터 잘 맞는 무용수는 드물다”라며 “마레인과 출 때는 잘 맞아서 운이 좋았다”며 웃었다.
10년 전에도 강수진은 같은 작품의 같은 배역으로 고국 무대에 섰다. 10년의 관록이 붙은 발레리나의 연기는 어떻게 변모했을까. “1998년에 처음 이 작품을 시작했는데 경험을 쌓을수록 훨씬 여유로워지는 느낌이에요. 더 많이 배우게 되죠. 발레뿐만 아니라 인생에서 배우는 것이 있으니까 다른 역도 굉장히 가깝게 와 닿더라고요. 파트너가 바뀔 때마다 제가 맡은 역도 바뀌는 것이 예술의 멋이랄까. 매일 아침 일어나면 컨디션이 다르잖아요. 매일매일의 강수진이 달라서 지금은 과거보다는 굉장히 프레시한 느낌으로 하고 있어요. 이 세상에 태어나 아름다운 예술을 할 수 있어 감사드려요.” 세상에서 가장 밉지만 예쁜 발 그에게는 늘 ‘최고’‘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1985년 세계 4대 발레 콩쿠르인 스위스 로잔 국제 콩쿠르대회 동양인 최초 우승. 이듬해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최연소이자 최초의 동양인 입단. 2007년 동양인 최초 독일 최고 예술 장인 궁중무용가 선정. 우리로 치면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인 셈이다. 죽 곧은 길을 걸어온 것처럼 보이지만 그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1999년 ‘브누아 드 라 당스’에서 수상한 직후 걸을 수조차 없는 고통이 찾아왔다. 고질적인 정강이뼈 악화였다. 한창 날개를 펴고 도약할 시기에 1년 넘게 무대에 서지 못했다. 원래 두 달 정도 쉬면 완치될 증상이었지만, 왼쪽 정강이의 통증을 참아가며 수년간 연습과 공연을 거듭해온 것이 무리하게 작용했다. 그래도 긍정의 발레리나에게 후회란 없었다. 그는 “지금은 그 정강이가 몸의 어느 부위보다도 강해졌으니까요”라며 활짝 웃었다. 강수진의 언니와 여동생은 하피스트, 남동생은 건축학도 출신의 비즈니스맨이다. 외할아버지는 ‘한국의 로트레크’로 불린 야수파 화가 고 구본웅 화백. 날 때부터 흐르던 예술인의 피도 무시할 수는 없었겠지만, 최정상에 오르기까지에는 인고의 세월이 있었다. 하루에 15시간씩 연습하며 닳아버린 토슈즈만 서너 켤레. 남들 같으면 2주는 사용할 발레 슈즈를 하루에 망가뜨리는 무서운 연습벌레였다. 오죽했으면 비품 담당 직원이 “그만 좀 쓰라”고 농담처럼 말했을까. 호수 위 우아하게 떠 있는 백조가 가라앉지 않으려 물밑에서 치열하게 발을 놀리듯, 독하게 연습해서 살아남은 순백의 발레리나는 누구도 넘보지 못할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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