ㄴ공연칼럼
아, 흘러가버린 봄날이여
구석구석 구기자
2015. 6. 8. 00:00
입력 2015.06.08 / 991호(p76~76)

그 시대 자체가 기구했던 걸까. 주요 인물들의 팔자는 하나같이 기구하다. 배우로 성공할 줄 알았던 동탁은 전쟁으로 절름발이가 돼 떠돌이 이발사로 삶을 이어가고, 명자는 삶에 볕이 들 만하면 운명이 심술을 부린다. 제목은 ‘봄날이 간다’지만 명자에게 ‘봄날’이 언제였나 싶을 정도다. 흔한 신파극이 될 법한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은 베테랑 배우들의 연기다. 단장 역의 배우 윤문식과 동탁 역의 최주봉은 2003년 초연부터 작품에 참여했다. 올해는 정승호가 동탁 역에 더블 캐스팅됐다. 김성녀와 고(故) 김자옥의 뒤를 이어 명자 역에는 양금석이 캐스팅돼 특유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한 많은 삶을 들려준다.

6·25전쟁, 분단의 아픔, 베트남전쟁 등 옛 세대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소재를 다뤘지만 젊은 관객에게도 부담스럽지 않다. 극 중 동탁이 선보이는 ‘이수일과 심순애’ 장면은 배우의 내공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이외에도 ‘갑돌이와 갑순이’ ‘청실홍실’ ‘차차차’ ‘서울의 찬가’ ‘꿈에 본 내 고향’ 등 중년층의 향수를 자극할 만한 노래들을 만날 수 있다. 물론 이 시대 여인들이 순종과 인내의 아이콘인 명자의 삶을 들여다본다면 퍽 답답하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힘든 것을 참고 살며 자식만 바라봐온 헌신적인 사람들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지 않은가.
6월 21일까지,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 디큐브아트센터.